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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장애 / 팔정도 (Feat. 명상 배우기 38일차)
    잡동사니/사는데 필요한 것들 2020. 4. 28. 13:31

    매일매일 명상을 시작한지 38일차. 이렇게 무언가를 길게 매일매일 한 적이 살면서 있었나.. 싶다. 명상하면 힐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힐링이라기 보다는 훈련에 가까운 것 같다. 명상법중에서도 호흡명상을 따라 하다보니 힐링보다는 수련, 참선의 느낌이 더 큰 것 같다. 본인은 명상센터 운영하시는 분이 유투브에 올리신 영상을 가지고 호흡명상 5분 / 15분 하고 명상에 관련된 얘기를 한시간쯤 듣는다. 전에는 정말 내가 이렇게나 쓸데없이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는데 호흡명상을 하면서 깨달았다. 정말 이 생각 저 생각 널뛰기가 너무나 심했고 집중력이 생각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을,,, 전에 회사에서 일하면서 너무 힘들때 가끔 타라 브랙의 명상영상을 봤었는데 뭔가 그것보다 제대로 하는 느낌이다. 두달 끝내고도 매일매일 하지 않을까 싶다! 

     

     

     

    오장애

     

    오장애는 마음의 다섯가지 장애를 말한다

    상윳따니까야에는 붓다께서 오장애를 물에 비유하는 가르침이 나온다

        

    -첫째 감각적 욕망(kāmacchanda) 바라문이여마치 물그릇이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악의에 대한 것(byāpāda) 바라문이여마치 물그릇이 불에 달구어져 끓어오르고 거품을 일으켰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째 해태와 혼침(thīna-middha).  바라문이여마치 물그릇이 이끼 낀 수초로 덮였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네째 들뜸과 후회(uddhacca-kukkucca) 바라문이여마치 물그릇이 바람에 흔들리고 소용돌이치고 물결친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번째 회의적 의심(vicikicchā) 바라문이여마치 물그릇이 혼탁하고 혼란스럽고 흙탕물이고 어둠속에 놓여 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 Samgarava-쌍가라바의 경상윳따니까야 S46:55, 전재성님역

    <종교와 젠더 연구소> 

     

     

     

    팔정도

    『밀린다팡하』(해제)

    팔정도

    [ 八正道 ]

    <해설>
    팔정도는 고(苦)를 끊는 길(道)에 대한 여덟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중도(中道)로 불리기도 하는데,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감각적 쾌락을 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고행으로서 자신을 괴롭히는데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양 극단을 떠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바른 견해(正見, Right Understanding, Samma ditthi)
    2. 바른 사유(正思, Right Thought, Samma sankappa)
    3. 바른 말(正語, Right Speech, Samma vaca)
    4. 바른 행동(正業, Right Action, Samma kammanta)
    5. 바른 생활(正命, Right Livelihood, Samma ajiva)
    6. 바른 노력(正精進, Right Effort, Samma vayama)
    7. 바른 새김(正念, Right Mindfulness, Samma sati)
    8. 바른 정신통일(正定, Right Concentration, Samma samadhi)

    이 여덟 가지 덕목을 서술한 순서는 별 의미가 없다.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있고, 어느 한 방향에 무게 중심을 둘 수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근기나 환경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우선 여덟 가지 덕목이 의미하는 바를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정어(正語)라 함은 (1) 거짓말을 하지 않고, (2) 사람 사이에 증오를 일으키거나 불화를 야기할 수 있는 비방을 삼가고, (3) 무례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고, (4) 불필요한 한담이나 허튼 소리를 경계함을 이른다. 말은 곧 생각이므로 말을 절제함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정업(正業)은 도덕적이고, 온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함부로 살생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부도덕한 거래를 삼가며, 성적(性的)인 방종을 삼가는 것을 이른다. 모든 행위 말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발로이다.

    정명(正命)은 우리가 생업을 영위함에 있어 남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일, 가령, 무기, 마약, 독극물 등 치명적인 물품을 거래하거나, 사기 등 부도덕한 행동을 멀리하고, 떳떳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함을 의미한다. 정정진(正精進)은 (1) 사악하고 온당치 못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2) 그런 마음이 이미 일어났다면 이를 제거하며, (3) 선하고 건전한 마음을 일으키고, (4) 일으킨 선한 마음을 계발하여 완성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정념(正念)은 (1) 육체의 활동(kaya) (2) 감각 및 느낌(vedana) (3) 마음의 활동(citta) (4) 사상과 생각, 개념, 사물(dhamma) 등에 대해 인식을 제고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것을 가리킨다.

    정정(正定)은 선정(Dhyana)으로 이끄는 수행이다. 첫 단계에서는 오개(五蓋), 즉 성적인 욕망, 악의, 무기력, 근심, 불안, 의구심과 같은 강렬한 욕망이나 잡념이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의 감정들이 유지된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서는 모든 지적인 활동이 통제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마음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기쁨과 행복의 감정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셋째 단계에 이르면 기쁨의 감정이 수면 아래로 침잠되면서 고요한 행복감으로 융화되고 마음의 평정상태가 유지된다. 선정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행, 불행, 기쁨, 슬픔 등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순수한 평정심과 또렷한 인식만이 남는다.

    정사(正思)는 모든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초연하면서도 사랑과 평화가 깃든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된 지혜 속에는 이러한 숭고한 덕목이 자리잡고 있고, 모든 이기적인 욕망, 악의, 증오, 격정은 일 개인에 한한 것이든 사회와 정치적인 맥락에서 나온 것이든 결국 지혜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견(正見)은 우리가 사성제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견은 사성제에 대한 이해로 귀착된다. 불교는 두 가지 이해를 가르친다. 하나는 일상적인 의미에서 무엇을 아는 것을 가리키는데, 축적된 기억이나 주어진 자료를 이용해 어떤 주제를 추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아는' 분별지(分別智, anubodha)이다. 이것은 깊지 못하다. 반면, 진실한 깊은 이해는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봄(無分別智, pativedha)으로써 얻어진다.

    팔정도란 결국 각 개인이 수행을 통해 몸소 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몸[身]과, 언어[口]와 마음[意]을 스스로 갈고 닦는 일이요, 자신을 정화시키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도덕적, 정신적 완성을 통해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해석>

    진리론(苦)

    集(苦의 緣生, dependent origination); 12지 緣起의 順觀

    滅(苦의 緣滅, dependent cessation); 12지 緣起의 逆觀=涅槃

    수행론(道)

    道(苦를 벗어나는 길)

    慧, 戒, 定

    正見(right view)

    正思(right purpose or right thought)

    正言(right speech)

    正業(right action)

    正命(right livelihood)

    正精進(right effort)

    正念(right mindfulness)

    正定(right concentration)

    사성제(四聖諦)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 팔정도(八正道)임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이것을 실천수행에 대한 강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성제의 구성은 인간의 현실적 양상[苦], 그 양상이 생기게 된 원인[集], 원인이 있는 것은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소멸시킬 수 있다는 진리[滅], 그리고 소멸시키는 방법[道]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교학은 이 사성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성제는 깨달음의 내용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로 나눌 수 있다. 전자를 진리론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수행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양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가지런해야 불법이 제대로 기능하게 된다. 진리는 수행을 위한 것이고, 수행은 진리에 의존하여 바른길을 지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정도 [八正道] (『밀린다팡하』 (해제), 2004., 서정형)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1893&docId=995729&categoryId=41894

     

    팔정도

    <해설> 팔정도는 고(苦)를 끊는 길(道)에 대한 여덟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은 중도(中道)로 불리기도 하는데,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은 감각적 쾌락을 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고행으로서 자신을 괴롭히는데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양 극단을 떠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바른 견해(正見, Right Understanding, Samma ditthi) 2. 바른 사유(正思, Right Thought, 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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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할아버지, 사성제에서 나오는 괴로움을 없애는 길, 도제가 바로 여덟 가지 길, 팔정도라고 하셨잖아요.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정견ㆍ정사유ㆍ정어ㆍ정업
    정명ㆍ정정진ㆍ정념ㆍ정정
    ‘괴로움 없애는 여덟 덕목’

    A 그래.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살펴보자꾸나. 팔정도는 부처님이 중도를 깨닫고 나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펴신 가르침이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받은 제자에게 남긴 말씀 또한 팔정도였어. 부처님이 되고나서 열반에 드시기까지 오롯이 펼친 가르침인 팔정도는 인도 빠알리 말로 ‘아리요 아탕기꼬 막가(Ariyo at˙t˙han˙giko magga)’라고 해. 그대로 풀면 ‘여덟 마디나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거룩한 길’이라는 말씀이야. 

    이 여덟 가지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은 괴로움을 없애는데 쓰는 덕목이야. 나무에 견주면 한 줄기에 달린 여덟 가지 또는 한 가지 안에 여덟 마디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어. 조선 초에 불경을 우리말 풀어낸 세종 임금님은 불경에 나오는 ‘평등’이라는 말을 ‘한 가지’라고 풀이했어. 평등이란 한 가지에서 나온 잎처럼 높고 낮음과 앞서고 뒤서는 것이 없이 고르다는 말씀이지. 그래서 팔정도가 정견에서 시작해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괴로움을 걷어내어 ‘정정’으로 매듭짓는다고 볼 수 없어. 여덟 가지 덕목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기에 더불어 열어야 한다는 말씀이야. 이제 팔정도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짚어보자꾸나.

    ‘정견’에서 ‘정정’에 이르기까지 여덟 마디에 모두 나오는 ‘정’을 사람들은 흔히 ‘바른’ 또는 ‘올바른’으로 풀어. 그런데 이 ‘정’은 빠알리 말로 ‘삼마(Samm)’야. 삼마에 담긴 뜻은 본디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이래. 더불어 ‘옹근’, 또는 ‘모두 아우르는 것’과 같은 뜻도 있대. 그러니까 팔정도에서 가리키는 ‘정’은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또는 ‘치우치지 않고 옹글게’라고 해야 한다고 봐. 

    사람들은 팔정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정견도 ‘바로 보기’ 또는 ‘바른 생각’으로 풀어. 그렇지만 삼마가 지닌 뜻을 새기면서 풀어보면 ‘정견’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현상을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보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까 꺼낸 ‘바른 생각’은 틀린 거냐고? 틀렸다고 보기보다는 본디 뜻을 살려 푼다면 정견은 ‘바른 생각’이나 ‘바른 헤아림’이라기보다는 ‘줏대세운 바른 생각 바탕에서 있는 그대로 보기’라고 해야지. 

    [불교신문3422호/2018년9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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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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